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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내가 안철수에 대한 생각을 바꾼 이유

2013.03.29 20:06

늙은도령



종편과 보수 언론의 안철수 죽이기가 극에 달한 지금,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안철수 전 후보를 맹렬하게 비판했던 필자가 안철수에 대한 생각을 바꾼 이유와 과정에 대해 밝힐까 합니다. 문재인 의원의 대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글을 전략적인 관점에서 쓴 것도 있고 정치적 접근의 의도도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냉철한 반성의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물론 저의 변화는 정치신인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에 대한 반성적 비판에서 시작해 모든 것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힙니다. 아울러 이런 관점의 변화는 저만의 고찰의 결과이며 보편적 타당성이 결여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가 될 수 있음도 밝힙니다. 저의 변화에 대한 설명에 부족함이 있다면 저의 무능함을 탓하시고 반대로 수긍할 점이 있다면 안철수에 대한 시각에 약간의 변화를 주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선한 이명박이라는 성공한 CEO 안철수에 대한 선입견

 

 

                       

                                                                                                연합뉴스에서 인용

 

필자는 반이명박 정서가 극에 달하면서 새롭고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기득권 정당에 대한 반감도 비슷한 수위로 높아가는 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봤고, 그런 현상들의 총합이 개인 안철수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져 ‘안철수 현상’이 탄생하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철수에 의해 ‘안철수 현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 ‘새 정치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를 불러내 ‘안철수 현상’으로 변질된 것으로 봤습니다.

 

 

도덕이니 인격적 결함이 있더라도 잘 살게만 해주면 좋겠다는 국민들의 바람이 압축성장 시대의 아이콘인 이명박을 대통령에 오르게 만들었지만, 지지자의 바람과는 달리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자 ‘안철수 현상’은 정국의 판도를 바꿀 만한 위력을 지닌 것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질적으로 개인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안철수 현상’에 그 동안 정치에 담을 쌓고 지내던 2030세대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얹어졌고 40대 이상에서도 추상적이지만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구와 기대가 더해졌습니다. 이때부터 ‘안철수 현상’은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고 정치 개혁을 바라는 거의 모든 요구사항들이 총 집결하게 됩니다.

 

 

헌데 저는 이명박이 성공하던 시절이나 최근에 이르기까지 건설업계의 관행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고, 현대건설 같은 대기업에서 회장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의 독단적 특성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명박에 대한 우려가 말도 못하게 컸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사업 실패와 불치병 판정으로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던 때여서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의 안티테제로 나온 인물이 안철수라는 사실에 아연실색 했습니다. 저도 안철수처럼 벤처사업을 했고 당시의 통신업계 사정을 뼛속까지 체험했기에 이명박에 비하면 성공의 크기라는 면에서는 너무나 작고, 기업의 CEO를 했다는 경험 면에서는 비슷한 안철수가 이명박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안철수의 성공이 저와 제 친인척과 친구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단한 성공도 아니고, 이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같은 의견을 표시했기 때문에 정치신인 안철수는 착한 이명박 정도 아니겠느냐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습니다. 저는 같은 CEO를 했다는 점에서, 친인척들이나 친구들은 그가 한국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는 점에서 공통된 인식을 같이 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소위 성공했다는 1%에 속하는 사람들(이들 중에는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도 몇 분 있다)의 의견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에 저의 선입관은 갈수록 강화됐습니다. 또한 기업 CEO 출신에게 그렇게도 혹독하게 당했으면서도 또 다른 기업 CEO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CEO 대통령’이라는 반정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서에 얼마나 물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경험이 말해주는 선입견의 강화에 따라 안철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대해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업 CEO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황제근성에 근거해 안철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어떤 인물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무작정 비판해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저도 반이명박 정서가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 이명박의 안티테제로서의 ‘안철수 현상’에 대한 몰이해

 

 

                  

                                                                                                  경향신문에서 인용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안철수 현상’은 반이명적 정서와 한국 정치에 대한 혐오, 증오, 저주는 물론 기성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반정치적 요소, 새롭고 깨끗한 정치에 대한 강한 열망이나 표현하지 못하는 혁명적 전복, 두렵지만 한 번은 보고 싶은 급진적 개혁 등이 어우러져 지극히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상호 충돌하는 내용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안철수 현상’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현상의 수혜자인 정치신인 안철수로서는 현상의 내용들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번의 실족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상 자체의 모호함과 복잡함 때문에 안철수가 어떤 선택을 하면 현상에 녹아 있는 다른 견해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일들이 반복됐고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안철수란 인간의 그릇이 협소하고 주변에 몰려든 인사들의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데 ‘안철수 현상’이 태초 이전의 시절 우주의 모든 성질들이 한데 모여 있지만 극단의 무질서를 통해 일정한 질서를 이루고 있는 혼돈의 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안철수가 아닌 당시의 누구라도, 아니 현재의 누구라도 ‘안철수 현상에 내재해 있는 요소들의 이질적 거리’를 극복할 수 없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안철수 캠프 측에서 어떤 정책적 아이디어와 공약을 내놓을 때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까지 호불호가 극단으로 갈리는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풀어내는 것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것이었는데 그때는 반이명박 정서 때문에 냉철한 판단을 결여하게 된 것입니다.

 

 

▲ 노원병 보궐선거를 정치 재개로 선택한 안철수의 변화

 

 

                                                                               TNT뉴스에서 인용                                                                                                    

안철수가 본 노원병 보궐선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이 현실정치 세계로 들어가는 최적의 방안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노원병은 기득권 집단의 카르텔적 이익 동맹에 의해 현역 의원이 희생된 곳이라 기득권 집단에 반하는 안철수로 자리매김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이라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역구 탈취라는 최악의 욕도 먹을 것이라는 각오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변화된 안철수, 즉 뜬구름 잡는 식의 정치가 아닌 현실정치에 눈을 뜬 안철수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겠지요.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했던 안철수가 노원병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탈취라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안철수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 현실정치에선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안철수가 보궐선거에 맞춰 정치 재개를 선택한 것은 적절했습니다. 또한 노원병이라는 곳이 서울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의 하나이고 그의 지지층이 많은 수도권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정치는 현실이고 정면돌파를 선택했다면 안철수로서는 지지자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 2030세대의 눈으로 본 안철수

 

저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2030세대들과의 만남을 늘려갔습니다. 실제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 안철수의 지지자로서 무엇을 가장 바라고 있는지, 그에 대한 신뢰는 여전한지 등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특히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제가 건강이 나빠 병원 신세를 져야 했을 때, 먹거리를 사러 마트에 갔을 때 20대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일단 그들은 힘겨워 했습니다. 일부는 삶에 대한 의욕도 없었습니다. 되는대로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원 비정규직이었고 최저임금 이하를 받은 적이 많았고, 임금 체불의 경험도 있었고,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가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하소연하고 조금이라도 바꿔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들 세대의 멘토이자 착하게 성공한 안철수가 하루라도 빨리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기를 바랐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서 2030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안철수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인구 구성비율로 보면 최소한 20명 정도의 젊은 의원이나 자신들을 대변해줄 정당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철수나 그가 창당하려는 신당보다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을 것 같다고 했고, 실제로 그랬고, 안철수는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 재개를 하겠다니 제가 만난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안철수의 국회 입성을 바랐습니다.

 

 

물론 그들도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시했습니다. 안철수의 선택이 보다 참신했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노회찬의 부인인 김지선 후보가 안철수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고, 진보정의당의 힘으로는 자신들을 대변해서 정책을 이끌어낸다는 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저도 너무나 힘겨워 하는 그들의 시선으로 노원병 보궐선거와 안철수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것들이 달리 보였습니다. 정말로 2030세대를 위해 정치생활 전체를 받칠 수 있는 큰 인물ㅡ비록 지금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해도ㅡ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정말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노동과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었고 경제상황에 대해 현장 정보를 유난히 많이 접할 수 있는 저로서는 그들을 대변해줄 안철수의 가치를 깨닫게 됐습니다.

 

            

                                                                                                리얼미티 여론조사 결과

 

▲ 안철수를 정치를 시작하는 사람 정도로만 보자

 

‘안철수 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선입견을 걷어내고 2030세대의 눈으로 안철수를 바라보자 그가 차기 대선후보 안철수에서 현실정치에 입문하려는 초보정치인으로 보였습니다. 그에게 대통령이나 정치 리더로서의 지나친 기대를 버리고 지금 그대로의 안철수를 바라보자 그의 그릇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의 선택이 정치적 도의에 어긋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철수에게 부산 영도에 출마해 ‘노무현의 길’처럼 대도무문 하라는 요구는 지난 대선에서의 혼란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이지 거기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은 과거지향적 요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치가 생물이듯이 안철수의 선택도 변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언제나 대통령감으로서의 국민의 잣대에 맞아 떨어져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이제 현실정치에 입문하려 하며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 그에 맞춰 다음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단계적인 전략들을 펼쳐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안철수 현상’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지고 큰 그릇으로 성장하면 이 땅의 2030세대들은 자신들을 대표해줄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을 한 명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저는 안철수의 선택을 지지하게 됐습니다. 그가 2030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며 차기 대권주자로 커나갈 수 있는 한 명의 재목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문재인 의원을 지지합니다. 듣는 귀가 누구보다 강한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을 가진 문재인 의원만큼 믿음이 가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참여정부 시절의 국정경험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커다란 자산입니다.

 

 

아무튼 2030세대를 위한 유력한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하고, 개혁적 자유주의와 합리적 보수주의라는 공간에 들어설 신당의 창당으로 다당제의 물꼬를 트는 정치인도 필요합니다. 다양한 사회의 이익과 이해들이 제도권 정치에서 의제로 정해지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수정·양보를 통해 하나의 컨센서스를 이뤄가는 타협과 상생의 정치가 가능해지려면 안철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돼야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보수화된 거대 양당 구조가 깨져야만 중도정당과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 급진적 성향의 정당들도 출현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다양한 여론을 반영하고 피드백이 되는 정당 구조가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성숙되고 발전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안철수의 선택을 지지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정당 구조 개혁과 정치신인 발굴을 통해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보다 수평적이고 참여적이며 정치적이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이번 글이 세 곳에서 벌어지는 보궐선거에 대한 냉철한 토론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저는 반성적 성찰과 지난 대선을 재구성하는데 최선을 다했기에 저의 선택에 대한 동의가 적더라도 부끄럽지 않으며, 만역 열정이 부족했다면 그것은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이번 글이 국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도록 그들의 꿈 속을 맴돌면 가장 만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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