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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개인정보 불법수집에 돈·조직 동원한 ‘민주 모바일 경선’

2012-02-28 16:22:05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선거인단 대리모집 등 폐해… 정치신인 등용 더 어렵게해

“○○○ 예비후보 사무실입니다.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누구를 찍으시겠어요? 경선에 참여해주시겠어요?”


경기지역의 한 도시에 사는 회사원 ㄱ씨(34)는 26일 오전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 온 전화에 늦잠을 깼다. 잠이 덜 깬 채 지지 의사를 표하자 곧바로 수화기에서는 다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터넷으로 저희가 등록시킬 테니, 핸드폰으로 인증번호가 갈 겁니다. 그 번호를 알려주시면 대신 처리해드릴게요.” ㄱ씨는 간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했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디서 알아 전화를 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전남지역에 사는 ㄴ할머니 집으로 30대 젊은 남자가 찾아왔다. “할머니, 민주당에서 국회의원 뽑는데, 오셔서 투표하세요. 주민등록번호만 알려주시면 다 알아서 신청해드릴게요.” ㄴ할머니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자, 그 남자는 “이 번호 맞죠”라면서 등록을 대신 해줬다.


민주당이 실시 중인 모바일 투표 경선의 단면이다. 돈봉투 없는 공천과 선거혁명을 이루겠다며 시작한 모바일 투표 경선의 이면은 전국 곳곳에서 동원경선의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부터 당 개혁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모바일 투표 경선을 연구해 왔다. 지난달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처음 시행하면서 60여만명의 모바일 선거인단을 끌어모았다. 이 같은 흥행 성공에 힘입어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도입하면서 자신감은 충만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국 지역구의 예비후보들은 선거인단 유치전에 매몰돼 있다. 돈봉투나 조직력이 동원되는 구태정치가 끼어드는 양상이다. 일부 예비후보들은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선거인단 대리 등록 작업을 시켰다. 컴퓨터 20~30대를 빌려 사무실에 설치하고, 지역 주민에게 전화를 걸어 선거인단에 등록해 줄 것을 홍보하고 대신 등록해주는 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비후보 측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 일당은 하루 7만~8만원”이라고 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명백한 불법으로 돼 있는 ‘콜센터를 이용한 선거인단 모집’을 하는 것이다.


이들이 입수한 주민 전화번호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지역 조직을 동원해 측근인 현역 지역위원장이나 지역구 시·도의원들에게서 명단을 얻어 활용했다. 지역구 관공서에 닿는 연줄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다.


관권선거 논란도 나온다. 실제로 전국 지역구에서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광주 동구 민주당 선거인단 모집과정에서 전직 공무원 조모씨가 투신자살한 사건이 그 예다. 선관위가 압수수색을 벌인 결과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서만 열람이 가능한 ‘2012년 주민등록일제정리조사 세대명부’가 발견됐다.


호남·영남 지역에는 고령 인구가 많아 수도권과 다른 양상이다. 모바일 투표를 하기 어려운 노인층이 많은 지역구라서 대부분 현장투표로 유도하는 식이다. 주민명부를 얻은 예비후보들은 조직력을 동원해 마을을 일일이 찾아 투표를 권유하는 것이다. 노인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같은 경우도 명부에 나와 있어 ‘대리등록 서비스’에는 문제가 없다.


돈과 조직력이 지배하던 과거의 동원경선 행태가 투표 방법만 모바일로 발전했을 뿐 여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 신인의 진출을 더 쉽게 하자는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많다. 


총선에 처음 도전장을 낸 김경록 예비후보(경기 안양 동안갑)는 “하루에 500명씩 모으는 유력 후보와 달리 조직이 없어 100명도 어렵다”며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민주당이 강조하는 모바일 정치 변화가 혼탁·과열 동원경선에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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