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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한겨레] 칼 대신 총을 들겠다는 안철수

2013-03-24 19:25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



[한겨레] 안철수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 <링컨> 외에 <나이프 파이트>(Knife Fight)란 영화도 관람했던 모양이다. 대선 후보의 정치전략가를 다룬 정치드라마인데, 제목은 대선을 ‘칼싸움’에 빗댄 것이라고 한다. 안철수는 미국을 찾아온 한 참모에게 이 영화를 본 소감을 이렇게 얘기했다. “지난번 대선 때 나는 칼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다른 후보들은 다들 총을 들고나왔더라.”


안철수가 대선에서 경쟁했던 이들을 ‘칼싸움판에 뛰어든 총잡이’로 표현한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다. 자신은 공정한 게임을 하려 했는데 기성 정치인들이 규칙을 위반했다는 불만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고, 무소속 후보로서 정당 소속 후보들과 대적하며 느꼈던 무력감을 하소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안철수는 귀국길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에게 <링컨>에서 배운 설득의 리더십을 얘기했지만 <나이프 파이트>는 언급하지 않았다. <링컨>의 ‘정치적 올바름’을 얘기하는 건 거리낄 이유가 없지만 <나이프 파이트>의 ‘정치적 현실’을 꺼내는 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가 다시 대선에 출마한다면 그땐 칼 대신 총을 집어들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안철수는 흔히 유시민·문국현과 비교되곤 한다. 세 사람은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 ‘반대’를 민주당이 독점해온 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 모두 민주당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민주당 바깥에서 정치를 도모했지만 반대세력의 구심점으로서 민주당이 누려온 독점적 지위를 깨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유시민의 개혁당과 참여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이 내놓은 상품은 민주당 쪽과 비슷하거나 외려 질이 떨어졌고, 가게는 옹색했다. 물건도, 가게도 볼품없는데 손님이 끌기를 바란 건 과욕이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안철수는 가게를 열기도 전에 무너졌다. ‘새 정치’와 ‘반정치’에 대한 혼동, 정당정치에 대한 오해, 비여비야의 모호한 정치적 태도 등이 그의 정치적 한계로 지적됐다. 안철수는 귀국길에 “저 스스로 많이 부족했다. 정말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사과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이런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는 국회에 입성한다면 신당 창당에 매진할 가능성이 크다. 10월 재보선을 정당 또는 창당준비위 형태로 치르고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본격적으로 ‘안철수 신당’을 띄워 호남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일합을 겨루려 할 것이다. 민주당의 지지부진과 지리멸렬은 ‘안철수 신당’의 성공 확률이 높은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이는 착시다. 신당의 앞길엔 위험한 암초들이 너무 많다. 안철수는 서울 노원병 4·24 보궐선거에 뛰어들지만 ‘민주당의 무공천’이란 협조 없이는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이것이 정치인 안철수가 발 딛고 선 냉혹한 정치 현실이다. 지방선거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다음 총선까지는 3년이나 남아 있다.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철수는 유시민·문국현의 전철을 밟으며 악전고투하기 십상이다.

안철수에겐 유시민과 문국현에게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현 집권세력은 유시민과 문국현을 두려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즐기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민주당을 제치고 ‘반대세력의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존재는 현 집권세력에 현실적 위협이다. 그를 두려워한다. 안철수는 ‘반박근혜’의 중심축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활로는 여기에 있다. 

임석규 정치·사회 에디터 sk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