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TA

[한겨레] 노 대통령, 검찰, 그리고 삼성

2005.08.12

김인현 사회부 사건팀장 inhyeon@hani.co.kr 
편집국에서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도청이라는) 불법행위다. … 아울러, 불법도청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고심되는 일이다.”(7월25일 수석보좌관회의)


“도청문제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이고 본질적인 문제다. … 정경유착도 무거운 일이다. 그러나 5공 청문회 때부터 그 진상이 그동안 계속해서 밝혀져 왔다. 그래서 그 전모가 역사적으로 상당히 밝혀지고 정리됐다고도 말할 수 있다.”(8일 기자간담회)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일련의 발언이 검찰한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이는 시민단체 등이 검찰이 테이프 내용 수사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2002년 노 대통령 쪽은 삼성에서 30억원을 받았다. 노 대통령 쪽의 불법자금 총액 113억원의 4분의 1을 약간 넘는 액수다. 또 노 대통령 쪽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이 옛날부터 도와주던 사람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고교 선배인 이학수 삼성 부회장으로부터 약간씩 ‘도움’을 받아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동전이 든 ‘희망돼지’ 저금통을 모은 액수보다 삼성 쪽이 준 돈이 많았다는 사실이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낳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선뜻 이런 의심을 떨쳐버리기 힘든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과연 정경유착의 전모가 ‘상당히 정리’됐을까 하는 생각도 이런 의심을 더한다.

“이○○씨는 만약에 이번에 후보가 안 되더라도 다음 정권에서 여러 가지로 영향력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다음도 생각할지 모르니까 도와줄 생각인데 ….”


“회장께서 해외로 떠나시면서 저한테 집행하라고 하셨다니까 기분이 좋았던지 자기는 이 회장을 존경한다면서 삼성이 기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더라구요.”


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학수 당시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나눴던 대화다. 정치권이 요구해서 준다기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주는 사실과, 이를 받는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건희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은 95년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때 불구속 기소돼 법정에 서야 했다. 당시 이들은 “우리도 피해자이며, 이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고 선처를 호소했고, 법원은 이들에게 관대한 형을 선고했다. 사면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97년 대선 때도 대선자금은 오갔고, ‘세풍’ 수사 뒤 치러진 2002년 대선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2002년 대선자금 수사가 95년 수사와 달라진 점은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기업인에 대한 선처 메시지를 보냈고, 이 회장은 아예 소환도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2003년 6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삼성 신경영 10주년 기념식’에서 “당장의 제몫 찾기보다 파이를 키워야 한다”며 ‘국민소득 2만달러’를 언급하자, 한달 뒤 노 대통령은 이를 ‘국정목표’로 제시했다. 대선 때 측근 가운데 “공약개발을 삼성경제연구소에 맡기자”고 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을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이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 발탁한 쪽도 노 대통령이다.


정보기관의 도청 피해자는 극소수 권력층이지만, ‘정·경·언 유착’의 피해자는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라는 사실을 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혹시라도 ‘작은 의리’가 ‘큰 의리’에 앞선다면 ‘희망돼지’를 모은 마음들은 이제 어디로 향해야 할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69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