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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끌고간 문재인 ‘책임론’… 끌려간 지도부 친노에 ‘화살’

2013-07-22 22:18:32

강병한 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궁지에 몰렸다. 자신이 공개를 주도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자 회의록 공개라는 초강수를 던졌으나 거꾸로 ‘회의록 실종’이란 덫에 걸린 처지가 됐다. 정치적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까지 거론된다.

문 의원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회의록 원본의 공개를 요구하며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킨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여권이 다시는 NLL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으려는 의도도 담겼다. 당초 어정쩡한 모습이던 민주당 지도부도 문 의원 주장에 이끌려 갔다.


전제는 원본 존재에 대한 확신이었다. 문 의원은 지난달 30일 “(대통령기록관의) 기록 열람 결과 NLL 재획정 문제와 공동어로구역에 관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입장이 북한과 같은 것이었다고 드러나면 제가 사과는 물론 정치를 그만두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여야가 22일 회의록 확인에 최종 실패하면서 참여정부가 애초 회의록을 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문 의원의 정치적 책임론은 불가피하다. 참여정부가 기록물을 넘기지 않은 것이 확인된다면 문 의원은 거짓말을 했거나 당시 상황을 몰랐던 것으로 귀결된다. 어느 쪽이든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 의원으로선 큰 상처다. 새누리당에서 “문 의원도 몰랐을 것”이라는 동정론이 나올 정도다.


문 의원이 주도한 ‘회의록 공개’의 정치적 실(失)은 한둘이 아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란 본질은 뒷전으로 밀렸고,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 책임과 남재준 원장 해임 요구도 ‘사초(史草) 실종’ 논란 속에 사라졌다. 여론조사에선 사실상 ‘NLL 포기 아니다’로 정리되던 흐름도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됐다.

대선 패배 후 정치적 재기를 준비해온 문 의원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우왕좌왕하던 야권에 다시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 수사 대상 1순위에 오르게 될 처지다. 봉하마을 사저가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친노무현(친노)계 인사들은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회의록 실종’ 논란이 진행되는 동안 친노 인사들 사이에선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답답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NLL 논란을 주도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면을 오도했다는 정치적 부담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됐기 때문이다.

친노 세력은 NLL 국면을 이끌면서도 ‘컨트롤 타워’ 없이 시종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전략적 목표도 분명치 않아 보였다. 결과적으로 상황 파악도 부재했다. 일각에선 특검을 통해 ‘회의록 실종’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다시 한번 정면돌파하자는 강경론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지만, 수용 여부는 미지수다.

친노 내부에서도 국면 전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친노 의원은 “NLL 논란은 그만둬야 한다. 이제 국정원 국정조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당초 김한길 대표는 ‘선(先) 국정조사, 후(後) 원본 공개’ 입장을 천명했으나, 이를 관철할 지도력은 부재했다. 당내에 회의록 공개에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았지만 지도부는 국회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의원에게 ‘경고장’을 보내기도 했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두고 지도부는 친노 세력에 화살을 돌린다. 당직을 맡은 한 의원은 “문 의원 말만 믿고 왔다. 친노들이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비노 측 인사는 “친노가 파놓은 늪에 민주당이 다같이 빠져 이제는 나올 수도 없게 됐다”고 했다.

문 의원은 이날 지역구인 부산에서 상황을 보고받으며 향후 대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명간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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