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대담 기자2011-11-10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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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공희준 대담(사회:김용민) 1
한화갑"공천독점,국회독점,투표독점 타파,김대중 대통령 가장 위대"
-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
나는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맞이하여 지난 8월 15일에 한화갑 대표에 대담을 진행한 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다른 거창한 정치적 이유도 아니고 순전히 녹음상의 기술적 실수로 말미암아 그로부터 석 달 가까이가 경과한 지금에서야 이 대담의 내용을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담의 사회는 최근 ‘나는 꼼수다’의 사회자로 맹활약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는 김용민 전 한양대학교 겸임교수가 흔쾌히 맡아주었다. 그는 현재 웬만한 아이돌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기의 절정을 지난 한화갑 대표와, 인기의 절정에 있는 김용민 전 교수와, 인기 근처에는 아예 가본 적도 없는 공희준 세 사람의 관점과 캐릭터를 비교하면서 대담을 읽어나간다면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해질 걸로 믿는다.
- 공희준 수복 대표
- 김용민 (이하 김) : 대표님 원래 지역구가 무안·신안이시죠?
= 한화갑 (이하 한) : 예.
- 김 : 그럼 내년에 그곳에서 출마하실 계획이십니까?
= 한 : 예, 현재 출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에서 출마하려고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을 네 번 했습니다. 제 고향에서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더 유명한 정치인이 되거나, 한 번 덜 한다고 해서 덜 유명한 정치인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의원의 자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원내에 들어가야만 몇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째로 제가 4선을 하는 동안 고향에서 추진했던 일들 가운데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신안군의 경우는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문제가 아직 두서너 개가 남아 있습니다. 무안군의 경우에는 제가 만들었다는 무안공항, 이른바 ‘한화갑 공항’이라고 방송에도 나오는 게 있습니다. 이 공항을 제가 만들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그 활성화 방안을 제가 직접 찾아봐야겠지요. 무안에서는 기업도시 건설이 수년 전부터 추진돼 왔습니다. 그 상황을 제가 정확하고 상세하게 파악해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질 수 있도록 그곳 군수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작정입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저는 호남 출신 정치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계실 때의 수준에는 비록 비치지 못할지라도 호남의 정치력을 어느 정도까지는 복원시켜놔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구가 어디든 간에 호남 정치인들이 일치단결해 타 지역들과 비교해서 여전히 낙후돼 있는 호남 지역의 발전을 위한 동맹 형태와 같은 것들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이후에 정치적 질서와 서열이 많이 파괴되어서 현재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선배도 후배도, 위도 아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의가 존중되는 정치질서를, 상호 배려가 살아있는 정치질서를 새롭게 다시금 만들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 김용민 교수
두 번째는 국회독점을 타파하는 일입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우리나라 국회는 2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있어야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섭단체로 등록되어야 국회운영에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무려 50명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교섭단체 구성을 하지 못한 탓으로 사실상의 무소속으로 있습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50명이 국회운영에 참여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학생이 출석부에 명단이 있음에도 학급 일에 대한 아무런 발언권이 없는 것과 똑같은 형국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일본 같은 경우에는 두 사람 이상이면 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소수일지언정 그 대표성을 인정하고 부여함으로서 국회운영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국회독점을 타파하는 개혁의 길이라고 봅니다.
세 번째로 투표독점을 타파해야 합니다. 현재는 유권들이 지역에 따라서 정당 단위로 투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증됩니다. 그러니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유권자들의 기대에미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유권자들이 각성해서 인물 본위로 투표를 해야 합니다. 해당 지역을 발전시킬 정책과 능력이 있는 인물에게 표를 찍어줘야 합니다.
공천독점, 국회독점, 투표독점의 세 가지 독점을 타파해야 참다운 정치개혁이 실혈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개혁을 위해서 노력하고 싶은데 이 일을 이뤄내려면 국회에 들어가야만 가능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국회의원 당선 자체가 목적일 수가 있겠지만, 저는 호남 지역의 무너진 정치질서를 바로세우고, 정치개혁을 효율적으로 관철시키려는 방법론적인 차원에서 원내에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 김 : 대표님 말씀을 종합해보면 독자세력화를 통해서 차기 총선에 대비하겠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어떻습니까?
= 한 : 예, 그렇습니다.
- 김 : 평화민주당의 틀로요?
= 한 : 평화민주당이 지금은 현실적으로 세가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내년 총선 때까지 유능한 인물들을 다수 영입하고, 아직 원내에 진출하지 못한 다른 정당들과의 통합이나 연대를 성사시킨다면 저는 평민당이 1988년 봄에 보여줬던 기적과 같은 돌풍을 또 한 번 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 김 : 작년 지자제선거에서 평화민주당 깃발로 선거를 치렀을 때는 괄목할 성과라고 부를 만한 소득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비춰볼 때 내년에 과연 원내정당화가 가능할 것인지 하는 의문이 솔직히 생깁니다.
= 한 : 올바른 지적입니다. 작년에는 우리가 선거를 바로 코앞에 두고서 급하게 창당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3월 15일에 창당선언을 하고서 4월 8일에 창당대회를 열었습니다. 세계역사상 한 달 미만의 이런 창당은 아마도 전례가 없을 겁니다. 이렇게 급조한 터라 돈도, 인재도 자연히 부족했습니다. 능력 있는 공천자들도 당연히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작년 지방선거는 완전 참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적 목표는 전체 투표자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 국고보조금 혜택을 받는 것이었는데그것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급조하다시피해서 당을 만들었음에도, 민주당에서는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이탈자를 방지한다면서 일부러 공천을 늦게 했습니다. 그러니 올 만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한테 올 수 있는 후보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이 평화민주당에 큰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그걸 거울삼아서 내년의 19대 국회의원 총선은 미리미리 발 빠르게 준비에 들어가 전국조직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 김 : 아까 대표님 말씀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에 정치 질서가 완전히흐트러졌다는 거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들을 지칭하시는 건지 풀어서 설명해주시면 이해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한 : 과거에는 국회에서 선수(先數)를 가지고 선배 대접을 했습니다. 국회직에 있어서도 선수가 높은 사람들이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열린우리당에 초선 의원들이 많아지자 초선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질서가 파괴되고, 서열이 무너졌다는 의미입니다.
- 공희준(이하 공) : 제가 원초적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마지막 정치인생을 지역발전,정확히는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가 정치권에서 흔하게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결심을 피력하신 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호남에서 출마하는 것을 죄악시하고 사갈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진보매체들. 콕 집어서 말하면 한겨레신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거기에서는 호남에서 출마하는 것을 크나큰 대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다루거든요?호남 지역 출마자를 대역죄인으로 취급하려는 논리를 어떻게 명쾌하게 반박하시겠습니까?
- 한 : 나는 그것(호남 출마를 죄악시하는 풍토)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민주당에서 호남 물갈이론이 흔히 나오는데 그러면 호남에다가 충청도 사람을 공천을 줍니까? 경상도 사람을 공천을 줍니까? 거기는 그대로 호남사람이 공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호남 사람을 또 다른 호남 사람으로 바꾸는 것일 뿐일 텐데 어째서 자기 고향에서 출마하는 것이 죄악시되는 겁니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편견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 고향에 내려가서 안주하려 한다는 비판들은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원내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쉽게 들어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구태여 힘들고 어렵게 들어가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는 고향에서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고향을 위해 보답하고 싶습니다.
- 공 : 특정한 인물을 또 콕 집어서 말해보겠습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재작년 보궐선거에서 전주 덕진에서 당선된 것을 나중에 사과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선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전주에서 정동영을 뽑아준 수많은 유권자들은 도대체 뭐가 되느냐 이겁니다. 그들도 사과해야 합니까? 누구한테요? 대표님의 후배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호남에서 배지를 단 것에 대해 큰 죄책감을 품거나 자괴감에 빠지는 경향이 대단히 강합니다. 언론에서도 그렇게 몰아가고 있고요.
= 한 : 나는 한 차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습니다. 다만 정동영 의원의 경우에는 서울로 올라왔던 사람이 다시 지역으로 내려가서 무난히 당선되려고 한다는 데 대해, 지도자로서 철학을 가지고 국민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면서 비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걸 사과했다고 들었는데, 사과할 만하다고 생각하니까 사과했겠지요. 내가 지역으로 가는 것을 두고 후배들에게 문호를 개방해주지 않는 행동이라는 비판은 제기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나는 후배들에게 내가 벌여놓은 일들을 원만하게 처리할 경험과 지혜가 있다면 그러한 비판에 기꺼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그들은 아직은 미흡합니다. 그 일을 해낼 만한 역량이 안 되어 있습니다.
패배주의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 공 : 앞의 질문의 연장선상에서 여쭙겠습니다. 어떠한 일에서든지 가해자의 잘못이 물론 더 크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 내부적으로도 뭔가 문제요소가 있지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실은 최근 들어 호남인들이 패배주의에 다시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호남은 영원한 비주류다. 우리는 영원한 비주류이기 때문에 우리보다좀 더 가능성 있는 사람과 손을 잡아야 비주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솟아납니다. 특히 호남의 젊은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써 비주류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남한테 의지해서 타율적으로 비주류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심리가 강하게 팽배해 있다고 봅니다. 호남의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깊이 중독돼 있는 패배주의적 사고야말로 친노세력의 부활을 가져온 단초였다고 저는 봅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떻게 보면 호남의 지식인 중에선 비교적 선배 축에 들어가는 입장입니다. 대표님께서는 호남의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이 어떻게 보면 김대중 대통령 당시보다도 더욱심각할 수도 있는 지독한 정치적 의존성 내지 타율성에 빠진 원인이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젊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 한 : 호남 지식인들이 그런 패배주의적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소수는 언제나다수한테 밀리니깐 어느 특정 다수와 결합하거나 그에 빌붙어 소수의 설움을 달래보자고요? 김대중 대통령은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에 대통령이 됐습니다. 호남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밀어주었기 때문에 네 번째 대통령 도전에서 당선된 겁입니다. 우리는 소수로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역사를 이뤄낸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또 그런 방식으로 역사를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패배주의에 젖어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영원한 예속의 굴레를 자초할 뿐입니다. 저는 그런 노예근성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5·18이 추모기간이 돌아와 광주에서 데모가 일어나면 중앙언론들은 전부 광주를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광주에서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서울에서 민주화 운동을한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광주에 가서 한판 벌여서 해먹고 올라오면 욕은 광주사람들이 먹었습니다. 이제 그런 바보짓 하지 말자는 겁니다. 예를 들면 5.18이 되면 누구를 초청하느냐? 무슨 재야 운동하는 시민단체들만 초청을해요. 그 사람들이 5.18 때 광주 구경이라도 해봤습니까? 5.18 때 희생된 그 가족들을 초청해서 진짜 5.18 정신을 이어가야 합니다. 5.18부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내 힘으로 이루겠다는 각오 없이는 어떤 일도 해낼 수가 없습니다. 호남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나한테 찾아와서는 “어이, 한 대표. 전라도 사람 대통령 되기어렵네, 그러니 우리 어떠어떠하게 해가지고 야당은 면해야 될 거 아니냐?”라고 합디다. 그래서 내가“그런 식으로 살 거 같았으면 감옥까지 가면사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수십 년 고생했겠냐? 나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진 정치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당신이 제안하는) 그런 짓은 안한다.”고 대꾸했습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전라도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또 전라도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 다음으로 대통령이 되겠느냐고? 이번에는 동서화합을 이룰 후보자 밀어주고 그 다음에 한화갑을지지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화갑 떨어뜨리기 운동을 한 겁니다. 광주의 시민단체들이 나와서는 선전물을 돌리고, 플래카드를 걸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마이크에다 대고 “한화갑은 광주의 역적이니까 표를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런 짓들을 한 목사가 고백하더라고요. 자기는 노무현을 지지했기 때문에 한화갑을 떨어뜨리기위해서 그랬다고. 그래서 내가 “그게 목사의 양심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노무현 밀어주고도 참여정부 때 호남이 크게 대접받았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전두환 정권 때까지도 전라도에서 여당 국회의원 숫자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푸대접이었습니다. 명색이 국회의원으로서 대접조차 못 받았습니다. 거수기 노릇만 했지.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나와서 싹쓸이하니깐 그때 어떻게 됐느냐? 우리몫을 내놔라 이거야. 우리도 한 축이다! 지역정당이라고 매도됐지만, 그나마 지역정당이라도 있는 덕분에 우리 몫을 찾아왔습니다. 수가 적더라도 단결된 힘을 가지고 우리 몫을 찾아야 합니다. 수가 적다고 아무데나 빌붙어 거기서 꼬리 흔들면서 아쉬운 소리 해대는 패배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김 : 민주당을 비롯해 호남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들 또는 인사들을 대표님을 포함해서 두루두루 다 따져보았을 때 호남에서 나올 만한 대권주자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 까요 ? 현실적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입니다.
한 : 대권주자 중심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진짜로 편 가르기입니다. 국가를 상대로 할 때는 누가 올바른 신념을 가지고 국민 전체를 위한 국가정책을 펴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지역을 상대로 할 때는 누가 건전한 생각을 지니고 자신의 지역을 위해서 일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국민들께서는 이걸 아셔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누가 앞서간다면서 마치 결과가 미리 정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미국 같은 데서는 선거 1년앞 정도 까지도 유력한 주자가 부각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보다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평가가 더 낫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대권주자가 없다는 것을 가지고 그쪽 세력이 약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은 그쪽의 민의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대권주자가 있는 곳에만 과연 민의가 존재합니까? 우리나라 정치만 보더라도 금년 초까지만 해도 누구누구 나온다고 하더니 또 지금 되니깐 누구는 들어가고 새로운 다른 사람이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선거가 임박했을 때 누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나는 특정한 정치권력에 빌붙을 생각은 없지만, 예를 들면 이렇게 같이 연합해야 남북통일에 보탬이 된다거나,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떠한 정책으로 연합하자는 흐름이 있다면 거기에 관해서는 연합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합종연횡은 ‘대의멸친(大義滅親)’을 생각하면서 이뤄줘야 바람직합니다. 자기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연합에는 나는 반대합니다.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연합은 성공도 못할뿐더러, 설사 잠시 성공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업적을 창출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목적을 막상 이루고 나서는 특별한 업적을 남기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어떤 일을 꼭 해야만 하겠는데 그걸 하려면 대통령 자리가 필요하다는, 봉사하는 마음의 소유자만이 대통령으로서 뚜렷한 치적을 남기는 겁니다. 이런 가치관에 입각해 정치지도자의 우열을 가려야 합니다. 단지 대통령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을 밀어줄 것인지, 이를테면 남북통일을 통한 한반도의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을 밀어줄 것이지를 구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안목과 지혜가 요구됩니다. 대의와 사익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도달하면 좋겠습니다. 단지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쪽 국민들은 영원히 지리멸렬하면서 국민 대접마저 제대로 못 받아야 합니까?
김대중의 5년은 박정희의 18년보다 위대하다
- 공 : 방금 업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관해 지난번에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통탄스럽긴 하지만 변함없이 박정희전 대통령이 1등을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약간 의아해했던 부분이, 물론 바로 직전 대통령이이니까 그 여파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이 훌륭하다고 대답한 사람의 세 배나 됐다는 겁니다. 정상적 사고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그 결과를 보고서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후한 평가를 받는 데는 물론 그 분이 극적으로 서거한 것도 상당히 작용했겠지만, 이른바 ‘노무현 키즈(KIDS)’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정치, 경제, 언론, 문화, 학계 등 사회의 여러 방면들에서 대단히 주도면밀하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더 본질적인 원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의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젊은 것도 있을 테고요.
- 김 : 노무현의 사람들 중에는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인물들도 꽤 있습니다.
- 공 : 거기에 비해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가신이다, 측근이다 했던 분들은 이제는 나이가 드신 탓도 있으나 너무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건 사실 제가 대표님을 비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왜 김대중의 사람들은 노무현의 사람들처럼 능동적이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치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겁니까? 나이가 많다는 것은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김 : 김대중의 사람들은 낡았다는 이미지들도 대체로 더 많이 갖고 있기도 합니다.
= 한 : 박정희 대통령이 1등하는 것은 독재도 많이 하고 그랬지만 경제문제가 주된 원인일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게다가 독재하는 대통령이기에 자기 마음대로 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겨우 5년간 집권했습니다. 민주화된 나라의 대통령이기에마음대로 못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18년과 5년을 어떻게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똑같이 다룰 수가 있습니까?
김대중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일궈놓은 업적들을 한번 살펴봅시다. IMF 외환위기 극복을 예로 들겠습니다. 영국이 국제통화금융 관리체제를 졸업하는 데 17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2년 반 만에 나랏빚을 다 갚았습니다. 게다가 대통령 취임 첫해에 50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39억 달러로 시작해서 2년 반만에, IMF에서 빌린 210억 달러를 모두 갚았던 것입니다. 이런 업적들을 박정희 대통령도 할 수 있었다고 장담할 근거가 있습니까? 남북관계 또한 돌아봅시다. 박정희 18년 통치기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시기처럼 남북문제가 잘 풀렸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단순한 비교라도 이런 일들을 전부 감안한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더욱더 높아질 것입니다.
- 김 :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대표님께서 한 가지 빼놓으신 게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터넷이란 세계 최강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만들어놨다는 사실입니다.
= 한 : IT산업, 한류열풍 이 모두가 김대중 정부 시절 그 기초를 닦아놓은 성과물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업적의 혜택을 제일 많이 누린 사람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보기술 산업의 발전 덕분에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으로 재미를 봤습니다. 또 한반도 정세가 획기적으로 호전되어 안정된 남북관계의 틀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장관하고 국회의원 했던 사람들을 거의 전부 그대로 가져다가 노무현의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본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국민의 정부의 청와대가 나서서 당시의 노무현 후보에게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이렇게 김대중 정부의 커다란 노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참여정부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없었으면 노무현 대통령도 없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동안 집권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힘만으로 집권한 것이 아닙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것을 빼면 노무현이 혼자 했다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복지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의료제도부터 노인수당에 이르기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구축한 튼튼한 토대 위에서 그걸 조금 수정해서 개선시켰을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국가에서 도와주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김대중 대통령 때 만든 제도입니다. 즉 참여정부 사람들은 국민의 정부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제도의 혜택을 누린 사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은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토대로 해서 가능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보다 훌륭하다는 대답이 세 배나 더 나온다는 여론조사는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100년 후에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을 객관적으로 다 제시해놓고 여론조사를 해본다면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오겠어요? 안 나오지. 따라서 이런 현상들은 무얼 의미하느냐면 소위 키즈(KIDS)들이 작용해서 그런 대답이 나왔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동교동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활동을 안 하느냐?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정부 10년’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DJ 5년 이후 노무현 5년 동안 우리는 야당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우리 정권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민주당 분당 이후 검찰에서 나를 기소까지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통틀어 경선자금 가지고 청와대에서 표적수사를 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김대중의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이토록 터무니없는 핍박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김대중의 사람들의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일방적으로 당한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노무현의 사람들은 실탄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요. 그래서 김대중 기념관 만드는 데도 누구 하나 변변하게 돈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 공 : 그쪽(노무현) 사람들은 정반대로 얘기하던데요. 자기들이야말로 진짜 개털이라고 말입니다.
= 한 : 천만에, 그렇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노무현 대통령 만드는 일부터 관여해서 더 늘어난 세력들까지 전부 청와대나 내각을 거쳤습니다. 그들은 정부와 청와대에서 자신들의 미래기반을 준비하고, 이후의 정치적 관록을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김대중의 사람들은 어땠느냐? DJ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더 황당한 건 정권을 재창출한 대가로 보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가혹한 시련을 경험했다는 거지요. 우리 동교동 세력의 본류는 김대중 대통령 때 무슨 직함 받아서 청와대로 가본 적도 없어. 내각에도 들어가도 못했고. 총리는커녕 장관이나 차관조차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겨우 국회의원 하는 걸로 끝나 셈이지. 그런데다가 돈도 없으니 사업도 못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즉시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추구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대북송금 특검안을 수용한 것은 자기는 DJ 후계자가아니라는 선언이었습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후보 시절에는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정작 정권을 잡으니까 ‘햇볕정책’ 대신 ‘평화번영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의 정책을 쓰는 게 아니라 나 노무현의 정책을 쓰겠다는 표시였습니다. 2007년 가을의 남북정상 회담도 언론이 ‘제2차 남북정상 회담’이라고 보도하니까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김대중 식이라면서 이번 정상회담은 노무현 작품이라며 ‘10·4 남북정상회담’이라고 고쳤습니다. 사사건건 DJ와 차별화 시도하고, 국민의 정부의 업적을 폄하하는 작업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이뤄졌으니 우리한테는 얼마나 황당한 일이었겠습니까? 지금 김대중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력하냐? 아까 말한 바대로 돈도 없고 관직경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우리 본류에 그 흔한 국회의원 된 사람들조차 없어요. 그러니 정치적 도약은 고사하고 자기의 품위를 유지하는 일조차 버거울 수밖에. 이런 것이 나를 참 슬프게 하는것들입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가어떻게 주도면밀하면서도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가 있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한나라당에서 바로 넘어온 손학규 씨를 민주당 대표로 밀어줬습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이 현역 국회의원임에도 공천을 주지 않았습니다. 동교동과 옛 민주계는 손학규 체제에서 철저하게 배제당했습니다. 그 결과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고, 그 도로 열린우리당이 손학규 세력과 합세해 민주당의 근본이자 본류들을 다 축출해버린 겁니다. 그러니 민주당 안에서는 우리는 공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활동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가 뛰쳐나와서 평화민주당을 만들어 민주당 본류에게 길을 열어주려 했습니다. 현재 동교동 사람으로서 민주당 내에 무슨무슨 고문이니 하는 분들이 여럿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말만고문이지 요 다음에 공천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국회의원이 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 동교동도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합니다. 당장 나부터 그래야겠죠. 민주당에 당내 선거가 있다고 하면 동교동이 중심을 잡고 정치세력의 한 축으로서 방향 제시를해주면서 심판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부 흩어져서 여기저기서 선거운동이나 해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한 거지. 그러니 주체성을 가진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이 모두가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비판적인 얘기일 테지만 나는 이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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